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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아버지형제분들의 추억/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벽진 이씨에서 유래한 나의 계보

by 아기콩 2008. 11. 28.
벽진 이씨 산하공파계 참판공파 운봉공계의 형주파 33세손, 이것이 나의 계보이다. 벽진 이총언 장군은 고려개국공신이라 하신다. 솔직히,,,멀고도 먼,,,옛 이야기 처럼 느껴진다.

  나의 8대조 할아버지는 의령에서 태어나 어려서 족보 한질 만 가지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가출인것이다. 그해 겨울,,,도착한 곳인 지리산 아래 소남,,이라는 곳이다. 이곳 유지인 함안 조씨 집안 사랑채에 머물다 눈이 너무 많이와서 그해 겨울을 사랑채 식객으로 지냈다. 그 집안 어른은 할아버지의 사람됨에 반하여 사위로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하여 할아버지는 의령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8대조 할아버지가 소남에 뿌리를 두게 된후 3대를 더 지내고 진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 정착한 곳이 옛 진양군 내동면 지역이였다. 진양호가 만들어지기전 그곳은 대평들을 중심으로 만석군이 3가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태안박씨 집안과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로서 우리집안의 뿌리는 내동면 인근에 흩어지게 되었다.

불과 20여년 전에 나의 작은할아버지와 어른 몇분이 의령의 종가를 찾아 잊혀진 8대조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리고 정식으로 대종보에 우리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다. 또한 8대조 할아버지가 장남이여서 의령의 선조를 내동면의 씨족들이 시제를 모시게 되었다 한다.
-------------------------------------------------------------------------------------------------------나의 글을 보신 작은 아버지께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셨다. 본문중 수정부분은 수정하였지만 본문에 삽입하기는 어려우나 꼭 알고 있어야 할 부분이 있어 메일을 그대로 발췌하여 아래에 옮겨둔다. 작은아버지의 가르침은 항상 고맙습니다. 200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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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사항 - 수정이 필요한 사항
11세 산화공-堅幹(大提學, 山花先生) 고려시대
15세 참판공-愼之(吏曹參判)
18세 운봉공-長城(雲峰縣監) 남원군 운봉면


1. 대평뜰 → 대평들(옛 진양군 대평면-대평무시, 배추로 그 명성 높았다)
2. 불과 10여년 전에 → 불과 20여년 전에 의령을 찾아 갔었다.
그 산소가 23세 亨柱 공(형주 공은 7형제의 막내 7남이었다)의 차남 24세 成奎 공이었고, 장남은 成章 공이었다. 成奎 공의 후손을 의령종가에서는 잃어 버린 줄 알고 있었다. 그 산소의 소재지는 의령군 낙서면 내제리 방계마을(면 소재지)의 면사무소 맞은편 야산이다. 의령군 낙서면 내제리는 벽진 李門의 집성촌으로 고대광실 고가가 즐비하여 현재 의령군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한번 답사해 볼만 하다.
23세 亨柱 - 24세 成奎 - 25세 漢錫(산청군 단성면 소남리, 즉 소남 할아버지 위에 위치한 묘, 초립을 쓴 초립동으로 의령에서 소남으로 흘러 들었다고 하는데 그 경로는 어떠했을까?)

26세 珍禧(소남, 아래에 위치한 묘) - 27세 宜魯(영강골 안골짝 명당자리의 묘) - 28세 祚新(굼벵이 밭골 위의 묘) - 29세 啓義(굼벵이 밭골 아래의 묘, 나의 증조부) - 30세 任基( 나의 할아버지, 안산 뒤편 양달) - 31세 泳一(나의 아버지) - 32세 元 - 33세 斗 - 34세 憲 으로 이어진다.
29세에서 진해, 석두(성택), 원섭, 원희, 대평(수길) 5형제로 분파되고, 이 5형제의 자손들이 운봉공계 진주종중으로 결합된 근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