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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작은 이야기/아들과의 작은 이야기

아들 한글 가르치기

by 아기콩 2008. 9. 30.

2008.9.29. 월요일.맑음.
요즘 나는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내년 초에 시험이 하나 있는데 꼭 합격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바쁘다.  오늘도 퇴근하고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오늘 휴관일이란다. 아직 감기 몸살 기운도 남았으니 즐겁게 헌진이랑 놀다가 자야지 하며 집으로 향했다. 

   헌진이는 한글 공부한다고 한창이다. 아내는 날 '자, 이제 아빠랑 하렴.' 하며 부엌으로 향해 버린다.  헌진이는 '아빠 같이해 하며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가 원망스럽다. 나의 가르치는 능력은 별로이다. 항상 결말이 좋지 않았다. 

  오늘 배우고 있는 글자가 '그,드,크, 트 ,프' 등 '으'자가 들어가는 말이다. 낱자 카드를 흩트려 놓고 양면테이프 붙힌 막대기로 집어 내는 놀이이다. 내가 글자를 말하면 헌진이가 집어 낸다.
" 자, 그림책의 그?"
"이거?, 아니 이거?"
"그래 잘 했어. 잘하는 구나"
아들은 두번만에 찾아 낸다. 평소 자주 보던 글자이다.

"드, 드짜가 들어간말이 뭐가 있나?..드레스의 드는 뭐지?"
글자 카드 뒷면에 그림이 있다.
" 이거?" 아들은 내 눈치를 본다.
"이건가?" 아들은 능청을 뜬다. "그래 이거야"
"그래 잘하내. 잘 찾으면서 그래"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글자를 불러 본다.
"수프의 프는 뭐지?"
아들은 이것 저것 내 눈치를 봐 가며 짚어 본다. 모른다. 난 못본체 그냥 미소만 뛰어 준다.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다 못해 내가 힌트를 준다. "사다리가 옆으로 있는 모습인데,,,"
헌진이는 힌트를 듣고도 한참 헤메인다. 피곤해 하는 모습이다.
슬슬 짜증도 내고 있다.

겨우 찾아 내고서는 아들은 나에게 제안을 한다.
"아빠, 글자 알아 맞히면 말태워 주기 하자."
거실 창문에 한글자 판을 붙혀 놓았는데 그기에서 글자를 알아 맞히면 말타기를 해 달라는 거다. 이 놀이는 오랜만에 한다. 

  " '라', 라디오의 '라'를 찾아 보세요." 역시 쉽게 찾아 낸다. 말을 태워 거실을 한바퀴 돌아 본다. 아들은 신났다. '너','그'등 쉬운글자 는 쉽게 한다. 빨리 돌아줘, 천천히 돌아봐. 이것 저것 요구 하며 아들은 재미 있어 한다. . 말 울음 소리도 내어줘 본다. 나도 장단을 잘 맞춰 준다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글자를 내어 본다.
"'프', 수프의 '프'를 다시 찾아 보세요."
아들은 헤메기 시작한다. 한번 당황하니 글자가 눈에 안들어 오는 모양이다. 바로 밑의 크까지 같다가  다른 곳으로 가고 만다. 지치고 잠오는 표정이 역력하다. 

  보다 못한 내가 힌트를 준다. 아까 글자카드을 비교 해서 찾아 보라고 한다. 하지만 한번 지치기 시작한 아들의 눈은 글자판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줄을 모른다. 다시 근처 까지 갔다가 답을 찍지 못한다. 
 
기다리는 나도 지쳐 간다.
"헌진아, 우리 내일 다시 해보자. 지금 잠이 와서 잘 안보이나 보다."
"싫어. 지금 찾을 거야."
아들은 다시 찾기 시작한다. 혼자서 '가, 나, 다,라,,,' '기역, 니연, 디귿,...' 해보지만, 이젠 글자카드 마저 꺼꾸로 들고 있다.

"헌진아, 씻고 책읽어 줄께. 재미있게 책읽자."
"싫어"
헌진이는 가끔 이럴때가 있다. 내가 봐서는 아무리 해도 안되겠는데 집착을 한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된다. 

  보다 못한 내가 다시 나선다. 글자카드를 보며 글자를 분해 해본다.
"헌진아, 잘봐. '프'는 '피옆'하고 '으'로 되어 있어. 피엽이 어디있지?"
아들은 겨우 찾지만, 난 칭찬을 아주 많이 해준다.
"그래, 잘 찾았내. 그것을 찾으면 다된거야."
"자,,'으'는 이게 '으'잖아. 자,,내려간다. 넌 옆으로 와봐."
손가락이 만나는 점에 '프'가 있다. 아들은 신기해 한다.

"다시 한번 해보자." 아들이 흥미를 느끼나 보다.
헌진이가 좋아 하는 유치원 친구들 이름중에 비교적 쉬운 글자를 불러 본다. '고', '유' 그리고 '지' 자를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서 찾아 내니 헌진이는 그렇게 즐거워 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칭찬해준다.
" 그래, 잘 찾내, 쉽지? 아주 잘했어."
칭찬에 더욱 기분 좋아진 아들은 씻자는 소리에 쉽게 욕실로 향한다.

올초에만 해도 자음과 모음 분리가 안되었는데 이제 가능해 보인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아들은 그만큼 자랐는 모양이다. 내일 아침 다시 해보아야 겠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 해도 답을 바로 가르쳐 주지는 말아야 겠다. 조금 생각하여 얻는 답이 오래 가겠지.

 책3권 읽어 주니 잠이 들어 버린다. 잠든 모습은 언제 봐도 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