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63

신어산 은하사 은하사 주소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설명 세월의 흔적과 단아한 멋이 엿보이는 김해 銀河寺 상세보기 동김해 I.C에서 내려 그대로 직진하여 올라가면 인제대가 나온다. 1KM 정도 더 올라가면 은하사, 동부스포츠센타, 충혼탑 등의 안내판이 나온다. 잠시 우회전 하였다가 좌회전하여 올라 가야된다. 우회전을 놓쳐 버리면 가야랜드, 가야CC 로 올라가버린다. 은하사의 창건은 가야의 건국과 같이 한다. 허황후와 같이온 장유화상이 서림사를 창건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약 1600년 전 이라고 한다. 경내에는 아직도 삼국시대 토기파편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은하사는 영화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 표지판이 남아 있다. 은하사 경내는 작은 편이다. 임진왜란때 .. 2008. 11. 16.
돈을 품은 동자승  신어산 은하사에서 찍은 사진, 탐방객들의 손원을 빌어 주기 위하여 100원짜리 동전을 품고 있다. 2008. 11. 16.
은하사 산책 2008. 11. 15. 토요일. 맑음.  아내가 퇴근을 하니 1시 30분이다. 우리는 점심을 대강 먹고 오랜만에 은하사로 가보기로 했다. 헌진이는 자전거 타며 놀자고 하였으나 우린 은하사로 가기로 하였다. 은하사는 김해의 진산인 신어산의 중턱에 있는다. 창건은 김수로왕의 신화와 같이한다.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김해에 도착하자 같이온 오빠 장유화상이 은하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은하사로 올라 가는 길부터 늦가을의 정취가 만연하다. 나무마다 색색이 잎이 물들었다. 단풍 아치를 통과하여 차를 주차시키고 내려보니 신어산 전체가 곱게 단풍치마입고서 우리를 맞이 하는것 같다. 주차장 근처 소나무 숲에 놀이터가 꾸며져 있다. 그네가 2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비어 있다. 헌진이 타고 싶다고 한다. 헌진이가.. 2008. 11. 16.
자녀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오늘 불현듯 '헌진이게게 무슨 말을 가장 많이 자주 하는가' 라는 주제가 머리속에 맴돌았다. 이 주제를 생각해보니 덩달아 하루에 몇시간이나 아이와 같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헌진 기상시간 : 7시 에서 7시 15분 사이. 우리 가족 모두 출근시간 : 7시 55분. 8시 전에 집을 나섬. 나의 퇴근시간 :저녁 7시(헌진이는 집에 와 있음) 헌진이 잠자는 시간 : 밤 9시 내지 10시. 내가 수영하러 가는 날(화목토) :저녁 8시 40분 집에서 나섬. 이렇게 계산해보니 아침에 45분에서 1시간, 저녁에 길어야 3시간, 격일로 1시간 30분. 합계 길어야 하루 4시간, 짧게 잡으면 2시간 15분. 이거,,나도 놀라겠다. 내가 헌진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평일에는 길어야 4시간 짧으면 2시간 남짓뿐이다. .. 2008. 11. 14.
이것이 무엇일까요? 순수 자연제품입니다. 이것은 지난 주말 진주에 갔을 적에 아내가 어머니에게서 얻어 온것입니다. 어머니는 이것을 지난 여름내,,,마당 수도가에 덩굴을 키워 가을에 수확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첫번째 사진 무엇일까요? 실같은 것이 저렇게 엉켜 있을수가 있지요? 절반만 봐서는 모르시겠어요? 그럼 전체 사진을 보여 드리죠. 이것이 자르기 전의 크기입니다. 전체 크기는 25㎝ 정도 됩니다. 전체적으로 실같은 것이 뭉쳐있는데 천연 자연제품입니다. 길죽한 모양은 꼭 오이 같습니다. 그런데 오이는 절대 저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단면을 보여 드리죠. 이것이 저녀석의 단면입니다. 세개의 구멍이 나있네요. 꼭 연뿌리 잘라 놓은 것 같네요. 하지만 저녀석은 열매랍니다. 열매란 증거로 저녀석의 저 구멍속에서 수확한 열매를 보여 드리.. 2008. 11. 13.
맷세의 새끼 기르기(아버지의 추억) 2007. 2. 15. 싸이월드에 작성한 글을 옮김. 산기마을의 옛집은 슬래트 지붕에 나무기둥이고 흙벽에 아궁이가 있고 큰방과 작은방 그리고 부엌에 딸린 작은방으로 윗채가 구성되어 있고, 아래채에는 창고가 두개 딸려있었으며 동쪽벽은 블록벽으로 작은할아버지집과 경계를 하고, 서쪽과 뒷쪽은 대나무 울타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쪽벽 밑에는 작은 화단을 꾸며 큰 대추나무도 있고, 봉숭화며 수국, 그리고 매년 봄마다 활짝 핀 작약꽃을 볼수 있었다. 대추나무는 새로 집을 지어며 배어 버리고, 작약은 지금 집 대문 앞으로 옮겨 여전히 활짝 핀다. 이집도 아버지가 월남참전으로 송금해주신 돈으로 할아버지때 지은 집이라고 하셨다. 이집 지을때 얼마전 돌아가신 완사 고모부께서 여러날을 여기서 주무시며 성심으로 도와 주셨다고.. 2008. 11. 12.